독서노트

도쿄대생은 바보가 되었는가

blueray 2009. 7. 8. 02:14




<그날>에서 책구경을 하다가 도발적인 제목에 이끌려 한번 집어본 책이었는데 의외로 꽤 재미있었다. 
책을 읽는동안, 만약 내가 이 책을 대학교 1학년때 읽을 수 있었다면 지금쯤 좀더 성숙하고 정서적으로 
풍요로운 인생을 살고 있지 않을까..싶더라. 개인적으로 학부 다닐 때 인문사회분야의 책들도 읽으려고 

노력한 편이었지만 공부는 왜 하는지, 대학이란 곳이 어떤 기회를 주는지, 그리고 나에게 필요한 공부를

어떤 식으로 할 것인지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별로 해본 적이 없었다는 것은 지금 생각해도 부끄러운 기억이다. 


책의 제목은 비록 <도쿄대생은 바보가 되었는가>이지만 도쿄대를 서울대로 바꿔도 책에 나오는 내용들은 
거의 전부 우리나라의 사정과 다르지 않다. 저자는 일본 문부성이 입시과열을 완화시키기 위해 중고교의 
이수과목 수와 대학입시 과목수를 동시에 줄이면서 대학에서의 학습에 필요한 최소한의 기본지식마저 
갖추지 못한 함량미달의 대학 신입생이 양산되었다고 비판한다. 또한 저자는, 대학 역시 학생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서 사회로 내보내야 하는가에 대한 일관된 철학이 없이 교양과정을 축소하거나 부실하게 
운영하고 단순 주입식 교육을 반복함으로써 창조적 인재를 길러내는데 실패하고 있다고 본다.

특히 저자의 견해 중에서 중고교의 이수과목 수를 늘리고 그 난이도도 일정수준 이상 유지함으로써 
학습의 강도를 높여야 한다는 것에는 개인적으로 동의하지만, 그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론이 제시되지 
않은 것은 이 책의 약점이다.  저자의 주장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공교육을 담당하는 일선교사들의

수업역량이 높아져야 하고, 둘째, 높은 학습강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학생들에 대한 보완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이러한 문제를 간과한 채 학습의 강도를 높이면 사교육 시장만 급격히 팽창하는 결과가 초래될 것은 불보듯 뻔하다.

결국 현재 중고교 교육의 하향평준화 문제는 교육시스템 차원의 문제, 즉 우수한 교사자원을 충분히 선발하고

양성할 수 있는가, 그리고 학생들간 학습능력 격차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가의 문제와 맞물려 있어 결코

쉽게 해결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반면 대학교육의 문제에 있어 이 책에서 특히 공감이 되는 부분은 도쿄대생을 '찻잔'에 비유하는 대목이다. 
교수는 주전자를 들고 모든 학생에게 차를 따라주는데, 그 찻잔의 '용량'은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고 저자는 말한다. 


".....수업시간에 학생들은 필기하는 로봇이 된다. 교수는 자신의 강의노트를 읽거나 칠판에 
옮겨적고, 학생들은 혹시라도 교재와 약간이나마 다른 부분이 있을까봐 걱정하며 필사적으로 
받아적는 식의 수업이 도쿄대학 설립이후 100년동안 계속되고 있다. 시험을 볼 때도 자신만의 
독창적인 답안을 작성하는 경우는 대부분 정답이 아니므로 감점처리되기 때문에 안전하게 
교수가 가르쳐준 것만 적는다....."


이러한 주입식 교육을 계속한 결과, 도쿄대 출신은 창조성이 결여되고 특권의식만 남아 사회 어느 
집단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인재가 되었다는게 저자의 주장이다. 반면 도쿄대와 달리 토론과 글쓰기를 
대부분의 수업에 필수적으로 포함시키는 자유로운 학풍의 교토대는 노벨상 수상자를 포함한 많은 
유명인사들을 배출하는데 성공하고 있다는 사실 역시 흥미롭다.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책의 내용 중에 한 대목을 인용해본다. 

"대학은 지식을 주입받는 곳이 아니라 스스로 공부하는 법을 배우고 훈련하는 곳이다. 주어진 문제를 
풀기만 해서는 제대로 공부하고 있다고 할 수 없다. 보다 중요한 것은 문제를 스스로 발견하는 능력이다." 

이 구절을 보면 강의란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해 뭔가 해답을 구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결국 
중요한 것은 강의의 궁극적인 목적이 '문제를 스스로 찾아 정의하고 해결할 수 있게끔 한다'라는 것을 
인식하고, 학생과 교수 모두 그를 위해 보다 의식적으로 접근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인식은 지극히 당연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는 여전히 요원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대학원 
과정에서조차 주입식 지식전달 -> 필기암기 -> 시험의 패턴이 기본적이고, 이 사이에 개개인의 창의력을 
자극하거나 새로운 문제를 발견하게끔 유도하는 시도는 거의 끼어들 여지가 없다시피하다. 30여년간 받은 
교육의 대부분이 주입식이었는데 어떻게 갑자기 새로운 것을 창조할 것인가..하는 막막함은 아마 모든 
국내 대학원생들의 고민일 것이다.

내용이 많아서 다 쓸 수는 없지만, 이 책은 교양의 의미와 교양교육의 중요성에 대한 대중의 잘못된 인식, 
그리고 그에 따른 교양과정의 부실화가 초래하는 여러가지 문제에 대해서도 뛰어난 통찰력을 바탕으로 
서술하고 있어 꼭 읽어볼 만하다. 한가지 안타까운 것은 학부를 이미 마친 입장에서는 저자의 주문대로 
마음껏 이책저책을 읽어볼 수 있는 형편에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을 아마 직장인이 읽는다면 읽기에 이미 한참 늦은 감이 있다. 반면 박사과정에 있는 
사람이라면 '공부를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에 대해 이 책으로부터 중요한 힌트를 얻어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