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

모든 일에 마감시간을 정하라

blueray 2009. 7. 8. 10:27

 

요즘에 경기도 안좋고 돈이 아까워서 꼭 필요한 전공관련 책이 아니면 거의 사지 않는데..
이 책은 교보에서 보다가 맘에 들길래 바로 집어들었다.

사실 책 내용은 뻔하다. 어려운 일이 있으면 보다 구체적이고 쉬운 일들로 쪼개고,
각 일들마다 마감시간을 스스로 정해야 속도가 붙고 능률이 오른다는 거..
사실 그걸 모르는 사람은 없는데..다만 실천이 안되니까 문제일 뿐..ㅡㅡ;;


근데 한가지 이 책이 재밌는 것은..
책의 중반 이후로는 저자가 직장생활을 회고하면서 내용이 엉뚱하게 삼천포로 빠지는데,
그 내용들이 앞부분의 진부한 얘기들보다 훨씬 정신이 번쩍 뜨이는 이야기라는 거..
이 책을 산 이유도 바로 그 뒷부분 때문이었다.

저자가 뒷부분에서 이야기하는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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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생활에서 성공의 관건은 '암묵지(tacit knowledge)'를 얼마나 빨리 흡수하고
창조하느냐에 달려있다. 문제는 이런 암묵지는 (by definition) 공식적으로
매뉴얼화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 지식이 존재하는지도 알아채기 어렵고,
아무도 친절하게 가르쳐주지 않는다. 따라서 상사나 동료들부터 이런 암묵지를
눈치껏 어깨너머로 배워야 하고, 부족한 부분은 스스로 채워나가야 한다.

암묵지의 관점에서 볼 때 직장인들은 크게 세 부류로 나뉜다.

(1) 공식적인 업무매뉴얼조차 제대로 따라하지 못하는 20%,
(2) 매뉴얼은 곧잘 따라하지만 암묵지를 제대로 습득하지 못해 탁월한 성과를 못내는 60%,
(3) 암묵지를 빠르게 흡수하고 스스로 창조하는 20%.

만약 자신이 (3) 에 속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조직에서 성공할 확률은 매우 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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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놓고 보니 좀 무섭네..ㄷㄷㄷㄷ

이 부분을 읽으면서 박사과정 역시 암묵지의 논리가 똑같이 적용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예를 들면, 처음 IFB/KSE DB 를 접했을 때,
교수님이 만들어 놓으신 fortran 샘플프로그램만으로는 도무지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왜 좀더 친절하게 해설한 자료를 만들지 않으셨을까..내심 원망도 했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교수님이 그럴 의무까지는 전혀 없는 것이다.
샘플프로그램은 최소한의 공식매뉴얼이고, 그 프로그램을 어떻게 응용하고 확장할 건지는
각자의 암묵지 습득능력에 달린 것이기 때문이다. 가장 많이 쓰는 SAS 의 경우도
박사과정 입학시에는 다들 대부분 비슷한 수준에서 출발하지만
프로그래밍 능력이 발전하는 속도는 학생들마다 천차만별이다.


논문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코스웍 2년(=공식 매뉴얼)을 마치면 신선한 논문 아이디어가 마구 샘솟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이디어는 커녕 수업내용조차 제대로 이해를 못해서 버벅거리는 사람들이 많은 현실은
아마 암묵지를 습득하는 능력의 차이일게다.
(나는 후자쪽에 가깝지만..후자쪽 그룹이 훨씬 더 쪽수가 많다는 것에 마음의 위안을..ㅎㅎ)


어쨌든 책을 읽고 나서 앞으로 어떤 것이든 <이해하기 힘들다는 것>자체에 대한
불평은 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왜 이런 건 아무도 친절하게 안가르쳐주지?'
'왜 자세하고 체계적인 설명이 없는거야' 하고 투덜거려도 더이상 아무 의미없는 일이다.
어느 누구도 모든 것을 세세하고 차근차근 설명하는 매뉴얼을 만들 의무가 없으므로..
다만 이 책을 좀더 이전에 읽었더라면 훨씬 더 적극적으로 수업을 받았을텐데 싶어
약간 아쉽다. 박사과정 학생이나 직장인이나 한번쯤 읽어보면 업무 면에서 좋은 자극이 될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