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노트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

blueray 2009. 7. 8. 10:29



공지영의 책을 읽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원래 국내작가의 소설을 거의 읽지 않는데다
공지영 하면 왠지 까탈스러운 페미니스트일 거라는 이유없는(?) 선입견도 어느 정도 작용했음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사실은 서점에서 이 책을 집어든 이유도 소설이 아닌 부담없는 산문집이기 때문이었다.

이번에 처음 알게된 사실인데, 공지영은 세 번의 결혼과 세 번의 이혼을 했으며, 세 명의 남편
사이에서 낳은 세 명의 성이 다른 자식을 혼자 키우면서 살고 있다고 한다. 얼핏 생각해도
평범한 인생은 아니었겠구나 싶은데, 작가 본인의 표현을 빌자면 '대한민국 국가대표급 이혼녀'란다.
이 책은 이렇듯 순탄치 않은 인생을 살아온 엄마 공지영이 나름대로의 깨달음과 경험을 모아
대학생이 된 맏딸 위녕에게 보내는 편지다.

근데 책을 읽다보니, 실제로 이 책에 더 공감할 사람들은 아마 20대 후반 이상 나이를 먹은
사람들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에 발을 조금 디뎌보니 미래는 여전히 불안하고,
대인관계는 상처투성이고, 내가 진짜로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확실히 움켜잡지 못한 보통의
사람들 말이다.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인생이 '은근하지만 끝없는 오르막'임을 실감하고 있고,
힘든 순간마다 '내가 어떤 삶을 살든 나를 응원해줄 사람'이 절실하게 필요하니까.
  
이 책은 두 번 읽었는데, 두 번째 읽을 때는 혹시라도 공감되는 부분을 놓칠세라 페이지의 한쪽
귀퉁이를 열심히 접어가며 읽을 정도였다. (최근에 논문 말고 두 번 심각하게 읽은 글이 있었던가 싶다)
읽으면서 때로는 혼자 낄낄거리다가, '아 이건 내 얘기인데' 싶은 부분들에 대해선 '음 맞아 그래' 하며
고개를 끄덕이다가, 또 '제발 이렇게는 살지마' 하는 내용들에 관해 내 자신 역시 결코 자유롭지 않다는
점을 깨닫고 급 반성모드로 바뀌는 등 처음부터 끝까지 책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ps. 마음에 들었던 부분들 일부 발췌

(1)

"위녕, 행복한 사람만이 진정 너의 친구가 되어 줄 수 있다"

사람들은 흔히 불행한 시간에 찾아와 위로해주는 친구가 진짜 친구라고 하지만, 그건 정치와 관직이
전부였던 남자들의 봉건적 세계에 더 들어맞는 말이 아닐까 싶어. 슬플때, 불행할때, 나쁜 처지에 처했을때
거들떠보지도 않는 친구가 좋은 친구라는 이야기는 물론 아니야. 그러나 사람은 자신의 불행을 함께
한탄하는 것을 다른 사람을 위로한다고 착각할 때가 많아. 진정한 우정은 그의 성취에, 그의 성공에
함께 진심으로 기뻐해줄 수 있는가 아닌가에 있고, 이런 일은 대개는 '스스로가 스스로임을 좋아하고 행복한',
스스로와 스스로의 삶에 긍정의 눈을 뜨고 있는 그런 사람들만이 해낼 수 있는 일이더구나.



(2)

'어느날 우리의 심장, 영혼, 육신으로 뚫고 들어와서 꺼질 줄 모르고 영원히 불타오를 정열에 우리 삶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나? 그것을 체험했다면 우리는 헛되이 산 것이 아니겠지?'


위녕, 모든 훌륭한 소설들이 그렇듯이 이 소설은 어떤 결론도 내리지 않고 소설 자체를 하나의 커다랗고
아름다운 질문으로 독자에게 통째로 던진다. 너에게는 열정이 있니? 진정 심장을 태워도 좋을만한 그런
열정이 있다면 너는 젊다. 그러나 네가 이력서와, 사람들이 이미 그렇다고 여기는 모든 것들을 아픔없이
긍정하고 만다면 너는 이미 늙거나 영원히 젊을 수 없을지도 몰라. 사랑하는 딸, 도전하거라. 안주하고 싶은
네 자신과 맞서 싸우거라. 그러기 위해 너는 오로지 네 자신이어야 하고, 또 끊임없이 사색하고 네 생각과
말과 행동의 배후를 묻고 또 읽어야 한다. 쌓아올린 네 건물이 어느날 흔적도 없이 무너지는 기분이 든다 해도
두려워하지 말아라. 생각보다 말이야, 생은 길어.

그리고 슬픔으로 얼굴이 창백해졌던 네 아름다운 친구에게도 전해 주렴. '우리의 동경이 현세에서 이루어지지
않아도,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이 우리를 우리가 바라는 대로 사랑하지 않아도, 우리를 배반하고 신의없게 굴어도',
삶은 어느날 그것이 그래야만 했던 이유를 가만히 들려주게 될 거라고. 그날 너는 길을 걷다가 문득 가벼이
발걸음을 멈추고, 아하, 하고 작은 미소를 지을 수도 있다고. 그러니 두려워 말고 새로이 맑은 오늘을 시작하는
것이라고 말이야. 그러고 나면 너희들 모두에게 어느 순간 생이 생 전체로 모든 질문에 대답하고 있는 날이 올 거야!



(3)

진정한 자존심은 자신에게 진실한 거야. 신기하게도 진심을 다한 사람은 상처받지 않아. 후회도 별로 없어.
더 줄 것이 없이 다 주어 버렸기 때문이지. 후회는 언제나 상대방이 아니라 자신을 속인 사람의 몫이란다.
믿는다고 했지만 기실 마음 한구석으로 끊임없이 짙어졌던 의심의 그림자가 훗날 깊은 상처를 남긴단다.
그 비싼 돈과 그 아까운 시간과 그 소중한 감정을 낭비할 뿐, 자신의 삶에 어떤 성장도 이루어내지 못하는 거지.

더 많이 사랑할까봐 두려워하지 말아라. 믿으려면 진심으로, 그러나 천천히 믿어라. 다만 그를 사랑하는 일이
너를 사랑하는 일이 되어야 하고, 너의 성장의 방향과 일치해야 하고, 너의 일에 윤활유가 되어야 한다. 만일
그를 사랑하는 일이 너를 사랑하는 일을 방해하고, 너의 성장을 해치고 너의 일을 막는다면 그것은 사랑을 하는
것이 아니라, 네가 그의 노예로 들어가고 싶다는 선언을 하는 것이니까 말이야.



(4)

무엇인가에 표상을 투사하는 너의 배후는 무엇이냐? 네 속에 없는 것을 네가 남에게 줄 수는 없다. 네 속에
미움이 있다면 너는 남에게 미움을 줄 것이고 네 속에 사랑이 있다면 너는 남에게 사랑을 줄 것이다. 네 속에
상처가 있다면 너는 남에게 상처를 줄 것이고, 네 속에 비꼬임이 있다면 너는 남에게 비꼬임을 줄 것이다.
네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어떤 의미든 너와 닮은 사람일 것이다. 자기 속에 있는 것을 알아보고
사랑하게 된 것일 테니까. 만일 네가 미워하거나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너와 어떤 의미이든 닮은
사람일 것이다. 네 속에 없는 것을 그에게서 알아볼 수는 없을 테니까 말야. 하지만, 네가 남에게 사랑을
주든, 미움을 주든, 어떤 마음을 주든 사실, 그 결과는 고스란히 네 것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