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적끄적

박사과정을 한다는 것

blueray 2009. 7. 8. 01:44

요즘 정말 정신없이 바쁘다. 얼마전에 설악산에 1박2일 갔다온 것을 빼면 지난 두어달 동안 단 하루도 맘편히 쉬지 못했던 것 같다. 하루하루 요일도 잊어가면서 버겁게 공부하다보면 내가 나중에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이런 짓을 하나..싶은 회의가 들 때도 있다. 지금까지 겪어본 재무박사과정은 코스웍이나 논문 모두 이공계 박사과정 못지 않게 힘든 것 같다. 또 나같은 공대 출신에게는 경제학이나 통계학에 대한 배경지식을 스스로 쌓아야 한다는 어려움까지 있어서 박사과정을 버텨낸다는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 말은 제때 졸업하는 것 역시 만만치 않다는 얘기..)

뭐 공부는 원래 어려운 거니까 그렇다치고, 박사과정생의 삶을 힘들게 하는 것들은 또 있다. 제일 피부로 와닿는 것이 대략 세 가지인데, 첫째는 졸업을 언제 할지 본인도 예측하기 힘들다는 것과, 둘째는 기혼자는 결혼생활에, 미혼자는 연애전선(?)에 상당한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그리고 세번째는 세상의 모든 박사과정학생들에게 꼬리표처럼 따라붙는 경제적인 어려움이다. (이거 말고도 경조사 안가기 내지는 못가기에 의한 인간관계의 파탄-_-, 휴식과 공부의 구분이 안되고 항상 불안감에 시달림, 운동부족에 따른 건강해침 등등..많다. 누가 회사가 힘들어요 박사가 힘들어요? 한다면 나는 단연코 박사가 힘들다고 말할 수 있다.)

어쨌든 위에 말한 것들과 같은 어려움이 엄연히 현실로 닥쳐오기 때문에, 박사과정을 한다는 것은 상당한 인내심과 의지를 필요로 한다. 그것도 1,2년 잠깐 참고 마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4년 이상 버텨야 하니까 결국 이런저런 마이너스 요소들을 전부다 생각하면 절대 못하는게 박사다. 유학가는 경우는 더 말할 것도 없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박사과정 학생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박사라는 타이틀에 뭔가 매력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아마 사람마다 박사를 딴다는 것의 의미에 대한 나름대로의 생각이 있을 것이고 그에 따라 박사과정을 시작했을 것이리라.

내 경우에 박사를 하고자 결심한 몇 가지 이유중에 하나는 학위를 딴 후에 보다 자유롭고 싶고, 타인에 의해 내 인생이 지배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위에 적은 대로 박사과정을 밟는 것이 여러모로 힘들 거라는 것은 어느정도 예상했지만, 그것보다는 한번 밖에 없는 인생을 가급적 내 의지대로 살려면 박사학위를 따는 것이 적어도 지금 시점에서는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회사를 다닌 경험으로 미루어보면 조직에 몸담는 한 좋든싫든 타인, 혹은 그 조직이 나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 영향이 어떤 식으로 나에게 작용하게 될지는 예측이 불가능하다. 말하자면 거대한 강물속에 몸을 싣고 남들과 같이 떠내려가는데 언제 눈앞에 낭떠러지 폭포가 나타날지 모른다는 거다. 나는 회사를 다니는 내내 바로 그 점이 가장 싫었다. 남들이 모두 부러워하는 맥킨지를 다니건, 이름없는 중소기업을 다니건 조직에 밥줄을 건다는 점에서는 샐러리맨들은 결국 다 똑같다는 것. 내가 공부냐 취직이냐의 갈림길에서 공부를 선택한 가장 큰 이유였다.

기본적으로 박사과정을 한다는 것은 남은 인생 전부를 걸고 자기자신에 대한 시험을 치르는 것이다. 주어진 기간(4~5년) 내에 독자적인 이론을 완성하기 위해 큰 계획과 그에 따른 세부계획들을 세워 적절히 시간을 배분하고 끊임없이 자기를 통제하고 채찍질해 가면서 도전하는 것이 박사다. 주제를 놓고 아주 깊게 고민하는 노력을 하지 않거나, 쉬고 싶은 유혹에 굴복해 스스로 쉽게 타협하는 사람은 결코 목표지점에 도달할 수 없을 것이다. 많은 노력과 시행착오 끝에 얻어지는 박사학위는 '박사'라는 결과보다는 그 과정을 이겨낸 자기자신에게 커다란 성취감과 자신감을 가져다 줄 거라는 데서 더 큰 의미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하루하루 열심히 살다보면 논문도 나오고 언젠가 졸업하는 날도 오겠지? :)